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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필, 디카시의 창] 남은 발 / 손덕순
작성 : 2026년 10월 13일(화) 06:06 가+가-
몸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은 잘라내고
끝내 남겨 놓은 것은
걸어온 길의 한자락이었다

■ 감상평- 광주디카시인협회 제공

손덕순 시인의 디카시 <남은 발>은 사진(이미지)이 주는 시각적 압도감과 짧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언술)이 긴밀하게 결합된 출중한 작품입니다.

1. 이미지(사진)의 관점: 파편성과 역사의 무게감

• 거대한 발의 실체성: 사진 속 대상은 박물관 혹은 전시 공간으로 보이는 장소에 홀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석조/토조 불상의 ‘발’ 부분입니다. 상반신과 몸체는 사라지고 오직 발가락과 발목 아랫부분만이 거칠게 마모된 채 남아 있습니다.
• 구도의 압도감: 발을 정면 아래에서 위로 조망하는 구도를 취함으로써, 유물의 거대함과 시각적 중량감을 극대화합니다. 세월의 풍파로 균열이 가고 갈라진 질감은 '시간의 흔적'을 그 자체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 공간과의 대비: 현대적이고 깔끔한 실내 공간(박물관 로비)과 오랜 세월을 견뎌낸 거칠고 파손된 발 유물의 대비는 '과거와 현재', '영원과 찰나'의 묘한 긴장감을 형성합니다.

2. 언술(시어)의 관점: 질문에서 상찰로 이어지는 철학적 굴절

작품의 텍스트는 4줄의 짧은 언술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몸은 어디로 갔을까?
시간은 잘라내고
끝내 남겨놓은 것은
걸어온 길의 한자락이었다

• 1~2행 (상실과 시간의 폭력성): "몸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이는 단순한 유물의 상실을 넘어, 한 존재의 찬란했던 전성기나 실체가 세월 속에 사라져버렸음을 환기합니다. "시간은 잘라내고"라는 표현은 유구한 세월이 존재를 해체하고 잘라내는 무자비한 힘을 지녔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 3~4행 (실존적 의미의 발견과 승화): 모든 것이 풍화되어 사라졌지만 "끝내 남겨놓은 것"이 존재합니다. 시인은 남아있는 거대한 발을 보며 단순한 '돌조각'이 아니라 "걸어온 길의 한자락"이라 규정합니다. 발은 곧 '걸음'이자 '삶의 궤적', '역사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3. 이미지와 언술의 상호작용 및 종합 시평

디카시는 사진이 묘사가 되고 언술이 시적 발견을 담아낼 때 최고의 시너지를 냅니다.
• 이미지의 확충과 은유적 변용: 사진 속 '잘려 나간 거대한 발'이라는 단순한 시각적 사실은, 시인의 언술을 만남으로써 ‘한 존재가 살아온 역사와 삶의 흔적’이라는 깊은 철학적 은유로 재탄생합니다.
• 시각과 관념의 일치: "시간은 잘라내고"라는 언술은 발목 위가 단절된 사진 속 유물의 모습과 정확히 결합하며, "걸어온 길의 한자락"이라는 결미는 무겁게 땅을 딛고 있는 사진 속 발가락들의 질감과 상응합니다.

• 총평: 손덕순의 <남은 발>은 존재의 소멸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삶의 궤적(발 자국)'에 대한 숭고한 헌사입니다. 덧없이 사라지는 삶 속에서 우리가 마침내 남기게 되는 것은 거창한 상반신(명예나 외형)이 아니라, 우리가 진실하게 걸어왔던 '길의 흔적'뿐이라는 큰 울림을 주는 디카시 작품입니다.
배진희 기자

news@pressz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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