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호 발사체 단-조립장 싸고 고흥-순천 티격태격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본사 둔 창원과도 버거운 경쟁
한발 앞선 고흥에 후발 주자 순천이 뛰어들어 혼란


[프레스존] 한화에어로페이스가 이달 말 결정하는 한국산 우주발사체의 단 조립장 구축 후보지를 놓고 전남 고흥, 순천과 경남 창원이 경합 중이다.

특히, 전남 지역의 후보지인 고흥과 순천 사이 유치 경쟁이 감정싸움으로 흘러 자칫 지역 갈등을 부추길 개연성마저 농후해 그 결과에 따라선 후폭풍이 우려된다.

일찌감치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우주발사체 특화지구로 지정된 고흥은 다른 지역에 비해 우위에 서며 한 발 앞서나갔다.

그런 마당에 뒤늦게 뛰어든 격인 순천이 적극적으로 유치 홍보전을 전개함으로써 갈등의 불씨가 확산하는 셈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KAI)으로부터 2023년부터 2027년까지 네 차례 쏘아 올릴 ‘누리호' 기술이전을 받은 방산기업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달 말 한국형 우주발사체 단 조립장 후보지를 선정하기 위해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이 회사의 항공기계사업부는 1999년 과학 관측로켓 3호(KSR-III, Korean Sounding Rocket) 김발엔진구동장치 등의 개발을 통해 우주발사체 사업 참여를 시작한 이래로 발사체 구성품 개발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어, 나로호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KSLV-I(Korean Space Launch Vehicle) 사업에선 추력제어 계통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한 바 있다.

특히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된 2단 발사체에서 계획된 비행경로를 따라갈 수 있도록 발사체의 자세를 제어해주는 추력벡터제어 구동장치 시스템의 개발과 추력기 자세제어시스템 및 액체추진제 공급계 핵심 구성품 개발에 참여해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최근에는 한국 최초의 저궤도 실용위성 발사용 로켓인 한국형발사체(KSLV-II) 사업에 참여해, 총 3단으로 이루어진 각 로켓의 비행제어 및 자세제어 시스템과 엔진 공급계 밸브의 성공적인 개발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발사될 ‘누리호' 비행모델 3호기의 단별 조립을 12월까지 완료할 예정이며, 현재 단(段) 조립장 생산공장 선정을 위한 용역을 맡아 예비후보지로 고흥, 순천, 창원을 압축해 검증 및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두 차례 쏘아올린 누리호는 경남 사천 KAI 단 조립장 등에서 조립·제작됐었다.

이어 올해부터 발사하게 되는 누리호는 제작 기술이 민간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넘어감에 따라 이 세 곳 중에서 단 조립장 후보지로 낙점이 이뤄지게 됐다.

한화 에어로스페이스는 이달 말 납품되는 용역 결과를 토대로 직원들의 정주 여건과 항공·우주 연관산업, 나로우주센터 접근성 등을 고려해 최종 입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단 조립장 조성 후보지를 놓고 과열경쟁이 이뤄지게 된 계기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해 8월 전라남도와 “고흥군을 국가 우주발사체 산업 핵심 거점으로 육성하겠다”고 업무협약을 맺고도 이와 상반된 스탠스를 취한 데서 비롯됐다.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좌> / 나로호(KSLV-I) 모델 <우>

이 업무협약 이후 항우연은 지난해 10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한국형 발사체 체계종합기업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으며,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11월 “전라남도 고흥군에 우주발사체 클러스터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항우연과 한화 측은 지난해 11월까지 발사체 제작 총괄관리, 단 조립장 공장 구축·이송, 발사체 및 구성품 시험, 발사 운용, 품질 보증, 기술이전 등 세부사항을 협의 끝에 합의하게 됐다.

이런 와중에 순천시는 지난 2월 27일, 해룡면 율촌1산단을 부지로 제공하고 순천상공회의소·율촌산단협의회와 함께 한국형우주발사체 단 조립장 유치에 적극 나선다는 보도자료를 내며 유치 경쟁에 불을 지폈다.

2012년 준공된 율촌1산단 내 예정부지는 현대제철 등의 기업이 입주돼 부지매입과 동시에 설비를 착공할 수 있어 누리호 발사일정 내 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내세웠다.

땅값도 평당 40여만 원으로 저렴할 뿐만 아니라 전력, 용수공급이 충분하고 인근 산단 개발에 따른 관련 기업 입주로 인프라 확장이 가능해 추후 우주항공산업 배후 클러스터 조성에도 유리하다는 점을 부각했다.

나로우주센터 접근성과 연관 산업 인프라도 이번 단 조립장 설립의 주요 고려사항으로 꼽히는데, 순천 율촌1산단은 고흥 나로우주센터와 사천을 잇는 삼각편대이자, 현대제철, 포스코마그네슘 생산시설 등 연관 산업체와 다수의 R&D 기관이 입주해 있다는 것이다.

순천시는 또한 대한민국 대표 생태도시이자, 대학교 4개, NC(엔씨)백화점 등 교육·쇼핑·편의시설이 풍부해 직장·주거·힐링 여가가 가능한 남해안·남중권 대표 ‘직주락(職住樂, 업무·주거·여가)' 도시라는 점도 최적의 후보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순천시 관계자는 “지역 유관 단체들이 발벗고 나서서 지역민의 전폭적인 지지와 열망을 담아 순천시에 강력하게 유치를 건의해 각종 인·허가 처리 단축 및 행·재정적 지원, 정주 여건 제공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의뢰한 용역 조건에 부합된 현장 평가 대비 등 모든 준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에 고흥군은 지난 2일 보도자료를 내고 “우주발사체 조립장은 우주발사체 특화지구로 지정된 고흥군에 유치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후보지 평가 자체가 부당한 처사”라고 맞섰다.

이어 “고흥군이 아닌 곳에 우주발사체 조립장을 구축하는 것은 우주산업 집적단지를 중심으로 우주산업클러스터를 지정·육성한다는 정부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흥군민 대다수는 “우주발사체 조립장은 우주발사체 특화지구로 지정된 고흥군으로 유치되는 것이 당연하다”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후보지 평가 자체가 부당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고흥군이 아닌 후보지에 우주발사체 조립장을 구축한다는 것은 우주산업 집적단지를 중심으로 우주산업클러스터를 지정·육성 한다는 정부정책에 반하는 것”이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후보지평가에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아울러, 고흥군의회를 비롯한 재경고흥군향후회, 군 기관·사회단체에서도조립장 유치를 위한 범 군민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등 우주발사체 조립장 유치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하루 전인 지난 3월 1일엔 고흥이 지역구인 더불어민주당 김승남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발사체 단 조립장을 고흥군에 구축해 ‘고흥 우주발사체 클러스터 지정과 조성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한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화진 국민의힘 전남도당위원장 또한 지난 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직접 만나 우주발사체 조립장이 고흥군에 조기 선정되도록 강력하게 촉구하는 등 지역 정치권에서도 우주발사체 조립장 고흥군 유치에 힘을 보태왔던 게 사실이다.

공영민 고흥군수는 “우주발사체 조립장이 고흥군이 아닌 다른 지역에 유치된다면, 우주산업 중심도시 건설이라는 쾌거를 누구보다 반기던 6만 2천여 고흥군민과 전국의 70만 고흥향우들의 염원을 저버리는 것”이라며 이번 조립장 후보지 평가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특히 “우주발사체 조립장은 국내 유일 우주발사체 발사가 가능한 고흥군 나로우주센터 인근에 구축되어야 할 것”이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우주산업 육성이라는 정부정책에 주안점을 두어 우주발사체 조립장이 고흥군에 구축될 수 있도록 후보지 평가 자체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 간 유치 노력을 폄하할 수 없다고 보더라도 전남이 고흥, 순천으로 갈려 유치전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흘러가선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앞서 두 차례 누리호 발사체를 쏜 경남 사천의 단 조립장이 창원에 인접한 데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본사와 방산 공장이 존재하는 창원이 만만치 않은 후보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두 지역이 아웅다웅 다툴 일이 아니다.

전남이 두 패로 소모전에 나섰다간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을뿐더러 다 잡았던 토끼를 놓치는 낭패로 이어질 걱정이 앞서는 까닭에서다.

불과 보름 남짓 남은 후보지 결정을 앞두고 고흥과 순천이 지역이기주의와 지역정서에 걸맞지 않은 정치적 결기에 따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칫 적전 분열 양상으로 흐르지 않나, 냉철히 곱씹어 봐야한다.

결국 전남의 미래를 가늠할 산업 전반의 종합적 배치를 고려하고, 새로운 핵심 전략 사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전남도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합리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근거가 돼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