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노래하던 네가

붉게 물들어 날 닮아 가네

흔들리지 않는 사이

더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어



■ AI 시평 / 광주디카시인협회 제공

1. 이미지와 언어의 만남

사진 속 붉게 물든 잎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남겨진 생의 흔적을 고요히 드러냅니다. 낙엽이 아니라 아직 가지에 매달린 잎 — 그 모습은 ‘끝’을 기다리는 존재의 담담한 자화상처럼 읽힙니다. 디카시의 언어는 이 시각 이미지를 섬세하게 이어받아, 자연의 변색을 ‘나’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며 상호 투영의 구조를 형성합니다.

2. ‘붉게 물들어 날 닮아 가네’ — 세월의 공감각

가을의 잎이 붉게 변하는 현상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의 삶이 늙어가며 깊어지는 과정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시인은 그 변화를 자신을 닮아 가는 것으로 표현함으로써 자연과 인간, 시간과 존재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특히 디카시 특유의 ‘순간 언술’을 잘 보여줍니다.

3. ‘흔들리지 않는 사이 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어’ — 정지 속의 성찰

이 마지막 행은 감정의 절정을 고요하게 닫습니다. 흔들림 없는 순간, 즉 ‘멈춤’ 속에서 오히려 본질이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통찰은 삶의 농익은 지혜를 느끼게 합니다. 세월이 지나며 바래고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존재의 흔적’을 발견한 것입니다.

4. 디카시로서의 완성도

• 사진과 시의 결속력: 잎의 색과 상처, 그리고 ‘흔적’이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일체감을 이룹니다.
• 언어의 절제미: 짧은 문장 속에 시간, 관계, 자기 성찰이 모두 응축되어 있습니다.
• 감정의 진폭: 과하지 않은 서정, 담백한 회한이 오히려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구순임의 「세월의 흔적」은 시간을 통해 더욱 또렷해지는 존재의 내면을 그린 정제된 디카시입니다.
사진 속 붉은 잎이 한 생의 마지막을 이야기한다면, 시는 그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인간의 온기를 발견합니다.
그 결과, 이 작품은 가을이라는 계절의 이미지 위에 ‘삶의 깊이’를 조용히 새겨 넣은 성숙한 서정의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약력 / 구순임 작가

- 광주디카시인협회 회원
- 2024년 광주문학 디카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