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과잉, 불황장기화 ... 화학업종 타격 심각
대기업들 구조조정, 공장중단, 인력·급여 감축
지역중기 폐업 우려, 여수경제 침체도 가속화


여수국가산단에선 창업도 안 되고 폐업은 되레 증가하고 있다. 대기업군마저 적자가 심각한 현 국면이 언제 사라질지 모를 만큼 지속적이다.

앞으로도 이대로라면 지역 중소, 중견기업들로선 어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일각의 지역 상공인들은 이 위기의 실상을 동네 기업들이 망해가고 있다는 시그널로 봐야 한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여수국가산단의 주력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은 현재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해 있다. 물론 이 위기 국면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으로 석유화학업계의 공통된 문제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위기를 어떻게 대비해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인지의 시급성, 다급함이 더해지는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최근 들어 지역 상공인들과 화학산업 업계, 전라남도와 여수시, 지역정치권이 위기의 석유화학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토론, 전문가 간담회 등을 열어 입법과 정책 입안의 모멘텀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활발하다.

본지는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과 시도들을 종합해 현 국면의 석유화학 산업 위기의 원인과 현상, 실상과 진단, 대안과 처방을 구체화하기 위한 분석을 몇 차례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프레스존=배진희 기자] 197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가 본격화한 이래 석유화학산업은 50여 년 동안 국가경제를 떠받쳐온 국가기간산업으로 국내외 주요산업의 성장을 견인해 왔다. 국가 생산과 수출의 핵심을 담당한 우리나라 석유화학 생산능력은 중국, 미국, 사우디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한다. 생산액도 자동차 반도체 기계 철강 다음으로 제조업 중 5위, 수출액도 반도체 정유 자동차에 이어 4위를 기록할 만큼 주력산업으로 꼽힌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은 1990년대 중반, 과점적 지위를 유지하던 유럽과 일본이 고부가 정밀화학으로 전환하던 시기에 그 공백을 메우며 세계적으로 입지를 구축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를 발판 삼아, 지난 20여 년 동안에는 중국의 고성장으로 석유화학 관련 제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 힘입어 높은 성장세를 지속해 왔던 게 사실이다.

글로벌 과잉투자

중국 자급률 상승 [한국화학산업협회 정광하 연구조사본부장 발표 자료]

이러한 호황 국면은 중국이 급격하게 에틸렌 프로필렌 등 화학생산설비를 증설 투자하고, 자급률이 지속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업계엔 위기를 불러오는 촉매제가 된 형국이다.

다시 말해, 플라스틱, 합성섬유 등 화학제품의 글로벌 공급과잉과 더불어 중국 업체들의 급성장은 국내 석유화학산업을 위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게다가 기후리스크와 이로부터 강화한 탈탄소 규제 문제는 커다란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특히 석유산유국가들이 포진한 중동에선 원유에서 직접 석유화학제품을 만들어 한국으로선 진퇴양난에 몰렸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오만은 최신공법 COTC(석유화학통합설비)로 에틸렌을 생산해 원가의 3분의 1 수준인 톤당 100불로 싼값에 많은 양을 공급한다니 앞날이 캄캄하다 싶기도 하다.

결국 유럽과 아시아 권역의 석유화학산업은 불황에 시달리며 적자생존의 위기로 내몰리는 시점임을 부인하기 힘들게 됐다. 국내 화학산업계 일부에선 오는 2028년까지 24% 폐쇄 위기를 맞게 된다거나 불황의 장기화로 여수지역 공장 가동을 줄이더라도 가동하면 가동할수록 손해라는 볼멘 소리들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올 상반기만 해도 국내 굴지의 석유화학사들이 공장가동을 축소해 70~82% 수준에서 간신히 손익분기 마지노선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지역 상공인은 “여수지역에 석유화학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큰데 대기업들이 경영이 수천억씩 적자경영에 내몰리고 있다”며 업계의 위기를 대변했다.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컬, LG화학, 한화솔루션 등 국내 4사들의 경우 공장 매각, 구조조정, 인력감축, 급여 축소 등으로 현 국면을 타개하려는 자구 노력에 나서고 있다는 소식이다.

또 다른 기업인은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역 중소 강소기업들은 살아남기 힘들고 여수경제에도 엄청난 타격을 줄 게 뻔하다”고 걱정했다.

실제 여수지역 통계 동향을 보면, 대기업들이 어렵다 보니 지역기업들의 창업이 2023년의 경우 전년 대비 16.7%로 급감했다. 폐업 현황도 같은 기간 12.4%나 급증한 것으로 조사돼 ‘창업도 안 되고 폐업은 증가’한 상황임을 방증한다. 여수시가 국가산단 기업들로부터 걷어 들이는 지방세 역시 올 5월까지 지난해 4천억 원 선의 반토막에 머물러 1천억 원 정도 부족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들로선 이익이 안 나면 법인세를 안 내도 되고, 이는 결국 지방세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직간접적으로 지원 정책과 예산 투입에 나서야 할 여수시로서도, 전라남도로서도, 국가로서도 어떠한 방안이라도 찾아서 이른 시일 안에 효과적인 처방전을 제시해야 할 때다.